애매한 성우의 위치

2006/01/22 10:59
[Abstract] 성우는 인지도나 팬의 수 등에서 마이너/비주류에 속하여 대중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며 주류 매체에서 다뤄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팬의 충성도는 어떤 아이돌에 못지 않다. [/Abstract]


우리나라야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성우들의 위치는 꽤나 애매하고 어중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품에 출연하여 연기를 하지만 탤런트나 영화배우와 비교되는 일은 없고, (인기가 어느정도 있으면)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지만 가수와 비교되지도 않습니다. 팬이 있고 팬클럽이 있고 팬과의 만남 같은 이벤트도 하지만 인기 스타나 아이돌로 취급되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 이유는 간단히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지요. 마이너니까요.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인의 시각에서 성우는 방송인에 가깝습니다. 탤런트보다는 아나운서쪽에 가까운 인식을 갖고 있지요. 물론 세상 무엇이든 예외는 있어 배한성 씨, 고 장정일 씨 등은 TV출연도 잦아서 인기가 높고 '왕질악', '레옹', '제트 블랙' 등으로 유명한 성우 김기현 씨는 시트콤,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배우로도 활동중입니다(최근 '제5공화국'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었죠).

일본은 '아이돌 성우(인기가 많은 성우)', '성우 아티스트(가수활동을 하는 성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반의 인식도 높고 몇몇 성우들은 많은 인기를 얻기도 합니다(물론 주로 여자성우를 중심으로 하지만). 그러나 이쪽도 마이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성우의 앨범은 본인의 가창력과 곡의 퀄리티, 앨범의 완성도에 상관없이 주류 음반시장에서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에 성우와 애니메이션 팬을 위주로 홍보되고 판매될 뿐이며 판매량도 대부분 만 장을 넘기기 힘듭니다(넘으면 대박수준). 그래도 어쨌든 손해볼 정도는 아니니까 계속 나오는 것일 테고 성우만 다루는 잡지도 네 종 정도 있겠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일본은 시장 자체가 크고 다양해서 그런지 잡지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이건 이야기가 다른 데로 빠지니까 그만하고요…….

아무튼 이렇듯 마이너한 성우계에서도 일본에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성우가 꽤 있습니다. 야마데라 코헤이 씨의 경우 우리나라의 배한성 씨에 해당하는 인기를 얻고 있고, 전성기의 하야시바라 메구미 씨는 앨범을 내기만 하면 주류 대중가요 순위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갈 정도로 인기가 높으니 그쪽에서도 주목을 해주었죠(TV 쇼프로그램 출연한 경험도 있고).

하지만 이 역시 예외일 뿐, 성우들은 대부분 마이너라 주류매체에서 주목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접을 받으려면 잘 팔리는 수밖에 없는데, 얼마전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해서 오리콘 인터뷰를 하고 TV쇼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미즈키 나나 씨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죠.

언젠가 시간이 나면 길게 쓰고 싶은 이야기지만, 마이너/비주류 문화가 주류 매체에서 주목받으려면 많은 인기를 얻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쉽게 말해 잘 팔려야 관심을 갖는 건데, 이건 상업적 가치만을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작 기존 마이너/비주류 문화 향유자에게는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가령 '해리 포터' 시리즈와 '다빈치 코드'가 우리나라에서 관심을 얻은 건 판타지와 역사추리라는 장르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책이 많이 팔렸기 때문이고 필립 K. 딕이 주목받은 건 그의 작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의 작품이 많이 영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성우를 일반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와 가수, 아이돌과 비교하기에는 팬의 숫자 등에서 차이가 너무 커서 곤란하지만 절대 지지 않는 부분은 있습니다. 바로 팬의 충성도 측면이지요. 전체 대중문화 향유자에서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성우 팬들의 성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어지간한 아이돌의 팬을 능가합니다(물론 일부 오타쿠들이 좀 과-_-해서 탈이지만). 어떻게 보면 더 좋은 점도 있어요. 나이먹은 아이돌은 금방 잊혀지고 (심하게 표현하면) 버려집니다. 하지만 성우는 외모가 딸려도, 나이를 먹어도 열심히 활동하면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몇몇 성우들은 아이돌이 되고 싶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욕심을 조금만 낮춘다면 많지 않으나 열성적인 팬들의 사랑을 오래오래 받을 수 있는 직종이 바로 성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노령으로 은퇴하신 도라에몽 주역 성우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드네요. 어떤 배우가 그렇게 오래 현역으로 꾸준히 활동하며 사랑받을 수 있겠어요(매우 드물죠).

두서없는 이야기를 슬슬 결론으로 돌리자면, 블로그 덕분에 마이너/비주류 문화가 비교적 접하기 쉬워진 것 같습니다. 제가 인터넷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애니메이션이나 비디오 게임을 취미로 한 사람은 PC통신 동호회에서 숨어서(?) 끼리끼리 놀고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당당히 만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알록달록한 디자인부터 한눈에 나이가 매우 어림을 알 수 있는 분들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아니가 꽤 많은 것 같은 분, 직장인임을 알 수 있는 분도 프라모델 조립이라든가, 애니메이션 감상이라든가, 성우에 대한 이야기 같은 (현실에서 섣불리 말하면 비웃음이나 이상한 눈빛을 얻기 쉬운) 마이너/비주류 취미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를 통해 쉽게 하고 계시지요. 저는 이런 것도 온라인과 익명성의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야기가 또 새어버렸군. -_-

결국 이 글의 목적과 결론, 주제는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맨 위의 요약(Abstract)부분만 보시면 된다는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다입니다.
2006/01/22 10:59 2006/01/2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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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cked from Maborosi=生天目仁美 2006/01/24 21:09  delete
    Subject : [잡담] 성우가 연예인이라고 생각 될 때

     저만 이런 묘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 성우분은 "연예인"이라는 느낌이 잘 안 들더군요.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계신 것 같다라는 알 수 없는 착각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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