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 이방인 - 로버트 A. 하인라인
2008/11/30 00:00
낯선 땅 이방인 -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장호연 옮김/GONZO(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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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계에서 온 구세주
SF는 미래 혹은 다른 세계(우주)의 일을 그리기 때문에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했다든가 시대정신을 그렸다든가 하는 평가를 받기가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평가를 받고 있는 드문 예로써 본작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대신 당시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 하위문화, 반문화)에 큰 영향을 줬다는 시대적 가치만큼 장르소설로써의 만족감은 덜한데, 그 이유는 영웅의 일대기나 종교의 시조를 다룬 전기물과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장르소설다운 반전이나 흥미로운 전개를 조금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플롯 때문이다. 굳이 스포일러라 느낄 수도 없기에 여기에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특이한 출생 → 인간세계를 경험 → 세상에 행적을 남김 → 종교와 흡사한 단체를 이끔 → 반대하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함
으로 열거할 수 있으며, 소설의 1/10 정도를 읽었을 때 추측이 가능한 이런 이야기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대표적으로 예수의 일생과 다를 바가 없으며 차이점이라면 예수는 사흘 만에 부활하였고 마이크는 하늘나라로 올라가 천사(?)가 되었다는 정도랄까.
물론 이러한 전형적인 영웅의 일대기와 흡사한 소설의 줄거리는 신화적이고 원형적인 구조를 통해 주인공을 신격화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대로다. 장르소설로서의 재미를 포기해가면서까지 얻으려 한 것은 결국 거대한 시대적 담론이다. 이 글이 그려낸 것은 개개의 인물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사상이요 그들이 살고 있고 살아갈 시대 자체인 것이다. 이런 대담하고 도전적인 시도가 결실을 맺을 수 있었기에 장르팬의 호응(휴고상 수상)을 넘어 시대의 고전으로 사랑받을 수 있었으리라.
2. 화성인의 사상 = 동양사상 + α
이 글에서 보여지는 화성인의 사상이 1961년 출간작이니만큼 당시 서구 사회의 기준에서는 충격적으로 보일 만한데,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화성인의 사상이라는 게 동양 철학에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의 소수 부족들의 문화를 섞어서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감한다(grok)는 것은 단순히 표현하자면 역지사지의 정신을 영혼의 공감이라는 측면으로까지 승격시킨 것이고, 마치 [눈물을 마시는 새](이영도, 황금가지, 2003년 1월)의 도깨비처럼 사후에도 영혼이 존재하여 원로로 존경을 받는 부분은 지식과 지혜를 축적한 어른들이 사회를 이끌며 존경을 받고 또한 사후에도 제사를 지내며 그들을 모시는 동양의 유교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고, “당신이 신입니다”라는 표현은 서구 사회에선 불경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당신이 곧 부처님”이라는 불교의 사상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는 표현이며, 물을 나누는 것은 술잔을 돌리는 동양의 문화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서로의 찻잔에 차를 부어 가득 채워주는 것이 예의인 중앙 아시아의 풍습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 외에 죽은 이의 시체를 먹으며 그를 기리는 것은 아마존 밀림의 한 부족의 풍습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며, 자유로운 섹스를 주창한 것은 순결을 중시하는 기독교와 엄격한 일부일처를 유지해온 서구 사회에 충격을 주기 위해 더한 것으로 보인다.
즉 화성인의 사상은 동양 철학에 식인, 자유 섹스 등을 섞어 서구 사회와는 전혀 다르고 충격적으로 느껴지기 위해 일부러 고른 소재들로 보인다. 따라서 동양인인 우리뿐만 아니라 문화인류학 및 세계의 종교와 문화에 대래 널리 퍼진 오늘날에는 단순한 충격은 덜할 것이다.
다만 공감과 물을 나누는 것과 죽은 이의 사체를 먹는 것과 자유로운 섹스에는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마음/물/영혼/행복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유와 차별로 얼룩진 서구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선 더없이 적절한 선택인 것이다. 특히 극중 등장한 포스터교는 오늘날 한국의 일부 대형 교회가 떠오를 정도로 거대화, 상업화, 사교화된 기독교의 분파로 나와 마이크와 대립을 하는데, 포스터교는 기독교의 폐단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희화화한 존재라고 보이며 이 역시 화성인의 사상을 두드러지게 보이며 서구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3. 과연 그는 화성인이었을까
그렇지만 이 글을 읽으며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화성인 사이에서 자란 지구인 마이크가 화성인의 능력을 완전히 익히고 있다는 점이다. 금발벽안의 아이라도 태어난 직후 한국인 부부 밑에서 자란다면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한국인으로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중력 등 모든 환경이 다르고 책에서 묘사된 바에 의하면 알에서 태어나며 다리가 셋인 화성인들 사이에서 자랐음에도 지구인 아이가 화성인의 문화나 사상만이 아니라 특수한 영적 능력까지 모두 구사할 수 있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이를 위해 본 필자는 문득 옛날에 읽었던 늑대 소녀에 대한 기사가 떠올라 검색을 했고 다행히 관련된 글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다(얼굴에 털이 나는 선천성 다모증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1920년대 인도에서 늑대들 사이에서 길러진 7, 8세 가량의 두 아이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네 발로 기어다니며 늑대와 흡사한 울음소리를 내고 날고기만 먹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아이들을 인간 생활에 적응시키려 했으나 한 아이는 몇 개월만에 죽고 다른 아이는 조금씩 적응하는 듯했지만 결국 17살에 원인불명의 병으로 숨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보면 화성인들 사이에서 자란다면 어느 정도는 화성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인간으로서의 육체와 정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가 아닐까. 소설에서 마이크의 정확한 나이는 알지 못했으나 대충 스무 살은 되는 것 같은데 기후, 중력 등 모든 요소가 지구와 너무나 다른 화성에서 생존이 가능한지, 화성인들 사이에 전수되는 어떤 방법을 지구인의 육체와 영혼을 가진 마이크가 습득하여 호흡과 심박 등 일반적인 지구인은 조절할 수 없는 요소를 자유로이 조절하며 더구나 염력과 물체를 없애는 등의 초능력까지도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는 것인지(소설에서는 마이크의 ‘제자’들도 염력 정도는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늑대들 사이에서 자란 늑대 소녀들은 분명 자기 주위의 늑대들을 따라서 울부짖으며 네 발로 뛰어다닐 수는 있었을 것이다. 또한 냄새를 잘 맡고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타고난 인간의 신체적 한계 내에서 발달한 것이 아닐까.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하지는 못했지만 그 늑대 소녀는 또래의 늑대들보다는 훨씬 느리고 허약하며 사냥 실력도 떨어지지 않았을까. 만약 늑대 소녀들이 마이크가 완벽하게 화성인의 능력을 익힌 것과 같이 늑대들의 속성(?)을 습격했다면 그 아이들의 이빨과 손톱이 늑대처럼 강력했을 것이고 네 발로도 개나 늑대들처럼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개인적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냄새를 잘 맡았다고 하지만 인간과 개 및 늑대의 코가 가진 후각세포 및 대뇌의 후각 감각 기관의 차이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늑대 소녀들이 냄새 맡는 능력이 늑대와 같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보다 뛰어날 뿐이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마이크의 여러 능력들이 화성인과 동등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쉽게 납득할 수가 없던 것이다.
호흡과 심박을 조절하고 염력과 물건을 없애는 능력이 지구인도 훈련을 통해 쉽게 배워 익힐 수 있는 정도라면 벌써 지구에서도 그런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화성인은 사후에도 영혼이 존재하며 원로로써 활동하고 있지만 지구인은 심령현상이나 사후세계 같은 것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니 엄밀한 의미의 과학소설로 봤을 때는 흠결이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당시도 그랬듯 오늘날에도 SF의 범위는 무척이나 넓고 대다수의 독자들은 어느 정도의 흠을 무마할 수 정도의 재미있는 소설을 얼마든지 SF로 인정해준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이미 SF의 품을 훌쩍 넘어버린 시대의 문제작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이니, 이러한 지적이 그저 장르팬의 푸념 정도로 여겨져도 불만을 가질 여지가 없는 까닭이다.
SF는 미래 혹은 다른 세계(우주)의 일을 그리기 때문에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했다든가 시대정신을 그렸다든가 하는 평가를 받기가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평가를 받고 있는 드문 예로써 본작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대신 당시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 하위문화, 반문화)에 큰 영향을 줬다는 시대적 가치만큼 장르소설로써의 만족감은 덜한데, 그 이유는 영웅의 일대기나 종교의 시조를 다룬 전기물과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장르소설다운 반전이나 흥미로운 전개를 조금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플롯 때문이다. 굳이 스포일러라 느낄 수도 없기에 여기에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특이한 출생 → 인간세계를 경험 → 세상에 행적을 남김 → 종교와 흡사한 단체를 이끔 → 반대하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함
으로 열거할 수 있으며, 소설의 1/10 정도를 읽었을 때 추측이 가능한 이런 이야기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대표적으로 예수의 일생과 다를 바가 없으며 차이점이라면 예수는 사흘 만에 부활하였고 마이크는 하늘나라로 올라가 천사(?)가 되었다는 정도랄까.
물론 이러한 전형적인 영웅의 일대기와 흡사한 소설의 줄거리는 신화적이고 원형적인 구조를 통해 주인공을 신격화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대로다. 장르소설로서의 재미를 포기해가면서까지 얻으려 한 것은 결국 거대한 시대적 담론이다. 이 글이 그려낸 것은 개개의 인물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사상이요 그들이 살고 있고 살아갈 시대 자체인 것이다. 이런 대담하고 도전적인 시도가 결실을 맺을 수 있었기에 장르팬의 호응(휴고상 수상)을 넘어 시대의 고전으로 사랑받을 수 있었으리라.
2. 화성인의 사상 = 동양사상 + α
이 글에서 보여지는 화성인의 사상이 1961년 출간작이니만큼 당시 서구 사회의 기준에서는 충격적으로 보일 만한데,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화성인의 사상이라는 게 동양 철학에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의 소수 부족들의 문화를 섞어서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감한다(grok)는 것은 단순히 표현하자면 역지사지의 정신을 영혼의 공감이라는 측면으로까지 승격시킨 것이고, 마치 [눈물을 마시는 새](이영도, 황금가지, 2003년 1월)의 도깨비처럼 사후에도 영혼이 존재하여 원로로 존경을 받는 부분은 지식과 지혜를 축적한 어른들이 사회를 이끌며 존경을 받고 또한 사후에도 제사를 지내며 그들을 모시는 동양의 유교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고, “당신이 신입니다”라는 표현은 서구 사회에선 불경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당신이 곧 부처님”이라는 불교의 사상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는 표현이며, 물을 나누는 것은 술잔을 돌리는 동양의 문화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서로의 찻잔에 차를 부어 가득 채워주는 것이 예의인 중앙 아시아의 풍습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 외에 죽은 이의 시체를 먹으며 그를 기리는 것은 아마존 밀림의 한 부족의 풍습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며, 자유로운 섹스를 주창한 것은 순결을 중시하는 기독교와 엄격한 일부일처를 유지해온 서구 사회에 충격을 주기 위해 더한 것으로 보인다.
즉 화성인의 사상은 동양 철학에 식인, 자유 섹스 등을 섞어 서구 사회와는 전혀 다르고 충격적으로 느껴지기 위해 일부러 고른 소재들로 보인다. 따라서 동양인인 우리뿐만 아니라 문화인류학 및 세계의 종교와 문화에 대래 널리 퍼진 오늘날에는 단순한 충격은 덜할 것이다.
다만 공감과 물을 나누는 것과 죽은 이의 사체를 먹는 것과 자유로운 섹스에는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마음/물/영혼/행복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유와 차별로 얼룩진 서구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선 더없이 적절한 선택인 것이다. 특히 극중 등장한 포스터교는 오늘날 한국의 일부 대형 교회가 떠오를 정도로 거대화, 상업화, 사교화된 기독교의 분파로 나와 마이크와 대립을 하는데, 포스터교는 기독교의 폐단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희화화한 존재라고 보이며 이 역시 화성인의 사상을 두드러지게 보이며 서구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3. 과연 그는 화성인이었을까
그렇지만 이 글을 읽으며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화성인 사이에서 자란 지구인 마이크가 화성인의 능력을 완전히 익히고 있다는 점이다. 금발벽안의 아이라도 태어난 직후 한국인 부부 밑에서 자란다면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한국인으로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중력 등 모든 환경이 다르고 책에서 묘사된 바에 의하면 알에서 태어나며 다리가 셋인 화성인들 사이에서 자랐음에도 지구인 아이가 화성인의 문화나 사상만이 아니라 특수한 영적 능력까지 모두 구사할 수 있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이를 위해 본 필자는 문득 옛날에 읽었던 늑대 소녀에 대한 기사가 떠올라 검색을 했고 다행히 관련된 글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다(얼굴에 털이 나는 선천성 다모증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1920년대 인도에서 늑대들 사이에서 길러진 7, 8세 가량의 두 아이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네 발로 기어다니며 늑대와 흡사한 울음소리를 내고 날고기만 먹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아이들을 인간 생활에 적응시키려 했으나 한 아이는 몇 개월만에 죽고 다른 아이는 조금씩 적응하는 듯했지만 결국 17살에 원인불명의 병으로 숨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보면 화성인들 사이에서 자란다면 어느 정도는 화성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인간으로서의 육체와 정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가 아닐까. 소설에서 마이크의 정확한 나이는 알지 못했으나 대충 스무 살은 되는 것 같은데 기후, 중력 등 모든 요소가 지구와 너무나 다른 화성에서 생존이 가능한지, 화성인들 사이에 전수되는 어떤 방법을 지구인의 육체와 영혼을 가진 마이크가 습득하여 호흡과 심박 등 일반적인 지구인은 조절할 수 없는 요소를 자유로이 조절하며 더구나 염력과 물체를 없애는 등의 초능력까지도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는 것인지(소설에서는 마이크의 ‘제자’들도 염력 정도는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늑대들 사이에서 자란 늑대 소녀들은 분명 자기 주위의 늑대들을 따라서 울부짖으며 네 발로 뛰어다닐 수는 있었을 것이다. 또한 냄새를 잘 맡고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타고난 인간의 신체적 한계 내에서 발달한 것이 아닐까.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하지는 못했지만 그 늑대 소녀는 또래의 늑대들보다는 훨씬 느리고 허약하며 사냥 실력도 떨어지지 않았을까. 만약 늑대 소녀들이 마이크가 완벽하게 화성인의 능력을 익힌 것과 같이 늑대들의 속성(?)을 습격했다면 그 아이들의 이빨과 손톱이 늑대처럼 강력했을 것이고 네 발로도 개나 늑대들처럼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개인적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냄새를 잘 맡았다고 하지만 인간과 개 및 늑대의 코가 가진 후각세포 및 대뇌의 후각 감각 기관의 차이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늑대 소녀들이 냄새 맡는 능력이 늑대와 같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보다 뛰어날 뿐이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마이크의 여러 능력들이 화성인과 동등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쉽게 납득할 수가 없던 것이다.
호흡과 심박을 조절하고 염력과 물건을 없애는 능력이 지구인도 훈련을 통해 쉽게 배워 익힐 수 있는 정도라면 벌써 지구에서도 그런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화성인은 사후에도 영혼이 존재하며 원로로써 활동하고 있지만 지구인은 심령현상이나 사후세계 같은 것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니 엄밀한 의미의 과학소설로 봤을 때는 흠결이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당시도 그랬듯 오늘날에도 SF의 범위는 무척이나 넓고 대다수의 독자들은 어느 정도의 흠을 무마할 수 정도의 재미있는 소설을 얼마든지 SF로 인정해준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이미 SF의 품을 훌쩍 넘어버린 시대의 문제작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이니, 이러한 지적이 그저 장르팬의 푸념 정도로 여겨져도 불만을 가질 여지가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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