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인터넷은?
2006/11/17 20:08
올해는 제가 인터넷을 시작한지 10년이 되는 해라서 여러가지 기념 기획도 하고 기념 작품도 만들고 나름대로 혼자놀기의 진수 뭔가 남겨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획의 일환으로 10년 전에 제가 어떻게 인터넷을 이용했는지 떠올려봤습니다.
* 남들보다는 비교적 자료를 많이 남겨놓는다고 생각했지만, 제 경우도 2000년 이전의 기록을 찾기는 좀 어려웠습니다. 떨어지는 기억력에 의존해보면,
* 당시 컴퓨터 성능 :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뭐 별로 안 좋았죠. -_-
* 당시 OS : 윈도우 3.1에서 윈도우95도 바뀌던 시기.
* 인터넷 접속방법 : 에듀넷 01444(번호는 불확실). 에듀넷 회원이었던 관계로 인터넷을 무료로 이용했음(물론 전화비는 내야죠).
* 브라우저 : 당연히 넷스케이프. 위키백과를 보니까 96년이면 3.0~3.03을 썼던 듯.
* 못된 짓(…) : 에듀넷에 자료가 없어 유니텔에 가입(…). 그 후 미국쪽 와레즈를 전전…… -_- 뭐 당시엔 별 것도 없었어요. 음악도 midi 파일을 주로 수집했고, 그저 만화 그림(jpg파일) 좀 크고 화질 좋은 거 없나 두리번거렸던 정도.
* 메일과 홈페이지 계정 : 네띠앙(인 듯)
* 주로 이용하던 웹사이트 : 야후, 네띠앙, 신비로, 라이코스, 인포시크, The Hunger Site 등은 다들 알겠지만 노던라이트(구글 등장 이전 최고의 검색 사이트), 데이브클래식(세계적으로 유명했던 고전 게임 정보 사이트), 서퍼즈패러다이스, 공짜넷, 인터피아98 같은 추억의 이름들(…) 참 인터피아98은 (이름을 보면 알지만) 98년 경에 생긴 듯 -_- 아무튼 오래 되어서 헷갈리네요;;
* 당시 자주 쓰던 프로그램 : 타자연습, 아래아 한글(2.0부터 3.0b까지 이용),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에듀넷 인터넷 자동 접속 프로그램, 나모 웹에디터, FTP프로그램(정확히 뭘 썼는지는 모르겠심), ACDSee, 리얼플레이어(당시 음악은 ra 포맷이 많았음), 프리셀(…)
* 쓰거나 구상하던 글 : 'Legend of Phenix(장편소설)', 'Cornucopia Dream 시리즈(게임 시나리오)', 'Dear Enchantress(연작 장편)', 'Grand Cross(장편소설)' 같은 것들이 있군요. 대부분 판타지이고 잘 모르는 게 겉멋만 들어서 죄다 영어 제목(…). 내용 같은 걸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어차피 글 쓸 게 없으면 써먹어야지

* 당시 홈페이지의 모습(재현한 것).
'아래아 한글 3.0b'로 만들고 'Namo WebEditor 2.1'로 다시 제작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아래 부분으로 잘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어떤 종류, 어떤 버전의 브라우저에서건 상관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 약 10년 전부터 저는 크로스 브라우징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요즘 불어오는 웹표준 열풍에 편승해서 앞서나가는 척, 잘난 척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저는 처음 만든 홈페이지부터 지금의 웹사이트와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크로스 브라우징과 낮은 해상도(지금도 800*600을 기준으로 삼음)에서의 무리없는 이용을 계속 고려해왔습니다. 웹표준이라는 개념에 대해 안 것은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얼마 되지 않았지만, 브라우저가 넷스케이프 말고도 존재한다는 걸 안 이후로는 늘 어떤 브라우저에서도 똑같이 보이도록, 이용이 불편하지 않도록 애써왔습니다. 그래서 웹표준에 대해 알았을 때 저는 속으로 환호했고, 그동안 우리나라의 웹 문화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지금 1996년으로 돌아가서 한 가지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실래요? 물론 복권 번호나 주식 시세를 기억하고 과거로 가서 한몫잡겠다(…)는 식의 답변이 제일 많을지 모르지만(단 당시 로또는 없었으니 복권은 무용지물일지도), 저라면 수수하게 그저 서점을 돌면서 이후 절판될 희귀본이나 수집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_-
생각해보면 당시 일본은 에바 붐('신세기 에반겔리온'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음)이라서 일본의 인터넷 발전에 약간의 기여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바 관련 정보를 다룬 홈페이지가 꽤 많이 나왔고, 그걸 퍼온 우리나라의 홈페이지도 생겼거든요. 그걸 계기로 서브 컬처가 웹이란 공간에서 비교적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지금도 그렇지만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보면 성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애니메이션을 봤다든가 프라모델을 조립했다든가 인형을 샀다든가 하는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실제로 만나면(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을 제외하면) 그런 말을 잘 하지 못하거든요(특히 남자들). 온라인의 익명성과 '예전부터 이런 서브컬처류의 정보가 많았다'는 인터넷의 관습적 전통(?)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막 생긴 MAME가 컴퓨터 성능 향상과 더불어 와레즈 조성의 기폭제가 된 듯 하고…… 우리나라 한정이긴 하지만 이후 터진 불미스러운 사건(속칭 오양 비디오)이 컴퓨터 업그레이드와 고속통신망 보급을 앞당겼다는 말도 있죠. 하지만 이런 논리는 얼마전 김본자 사건에서 일부 네티즌들이 그의 덕분에 웹하드 업체와 제지업체가 성장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틀렸다는 게 아니라, 결과론적 사고지요. 그럼 일제점령기 덕분에 한국 근대화가 빨라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아무튼 제 생각에 우리나라의 내외적 인터넷 환경이 좋아진 건 1997~98년이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최대 치적이 고속통신망 보급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IMF조기졸업은 후유증과 부작용이 남았고, 햇볕정책은 퇴임 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후임정권 후반에 핵실험 파문으로 찬반론이 일고 있어서…….
1996년은 인터넷의 태동기로, 막 인터넷으로 사업을 하는 벤처라는 개념이 생겼고, 사람들이 홈페이지라는 걸 보기(아직 만드는 게 대중적이진 않았음) 시작했고, (전자우편이란 게 있긴 해도) 아직은 디스켓을 들고 다니며 중요한 정보를 교환하던 시기였습니다. 아직은 PC통신의 힘이 강해서 지금 일선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PC통신 동호회에서 '끼리끼리' 놀면서 꿈을 키우던 시기, 통신업체들이 미래의 몰락도 모른 채 현재에 안주하던 시기이기도 했죠. 저 역시 컴퓨터와 인터넷보다는 슈퍼패미컴에 더 열중하던 때라서, 당시의 상황은 이를테면 거대한 태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함과도 같은 시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이 개인과 사회, 인류(물론 지구 인구의 상당수가 아직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전화를 접해보지도 못하고 있지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야 제가 말할 필요도 능력도 없는 부분이겠지요.
* 남들보다는 비교적 자료를 많이 남겨놓는다고 생각했지만, 제 경우도 2000년 이전의 기록을 찾기는 좀 어려웠습니다. 떨어지는 기억력에 의존해보면,
* 당시 컴퓨터 성능 :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뭐 별로 안 좋았죠. -_-
* 당시 OS : 윈도우 3.1에서 윈도우95도 바뀌던 시기.
* 인터넷 접속방법 : 에듀넷 01444(번호는 불확실). 에듀넷 회원이었던 관계로 인터넷을 무료로 이용했음(물론 전화비는 내야죠).
* 브라우저 : 당연히 넷스케이프. 위키백과를 보니까 96년이면 3.0~3.03을 썼던 듯.
* 못된 짓(…) : 에듀넷에 자료가 없어 유니텔에 가입(…). 그 후 미국쪽 와레즈를 전전…… -_- 뭐 당시엔 별 것도 없었어요. 음악도 midi 파일을 주로 수집했고, 그저 만화 그림(jpg파일) 좀 크고 화질 좋은 거 없나 두리번거렸던 정도.
* 메일과 홈페이지 계정 : 네띠앙(인 듯)
* 주로 이용하던 웹사이트 : 야후, 네띠앙, 신비로, 라이코스, 인포시크, The Hunger Site 등은 다들 알겠지만 노던라이트(구글 등장 이전 최고의 검색 사이트), 데이브클래식(세계적으로 유명했던 고전 게임 정보 사이트), 서퍼즈패러다이스, 공짜넷, 인터피아98 같은 추억의 이름들(…) 참 인터피아98은 (이름을 보면 알지만) 98년 경에 생긴 듯 -_- 아무튼 오래 되어서 헷갈리네요;;
* 당시 자주 쓰던 프로그램 : 타자연습, 아래아 한글(2.0부터 3.0b까지 이용),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 에듀넷 인터넷 자동 접속 프로그램, 나모 웹에디터, FTP프로그램(정확히 뭘 썼는지는 모르겠심), ACDSee, 리얼플레이어(당시 음악은 ra 포맷이 많았음), 프리셀(…)
* 쓰거나 구상하던 글 : 'Legend of Phenix(장편소설)', 'Cornucopia Dream 시리즈(게임 시나리오)', 'Dear Enchantress(연작 장편)', 'Grand Cross(장편소설)' 같은 것들이 있군요. 대부분 판타지이고 잘 모르는 게 겉멋만 들어서 죄다 영어 제목(…). 내용 같은 걸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 당시 홈페이지의 모습(재현한 것).
'아래아 한글 3.0b'로 만들고 'Namo WebEditor 2.1'로 다시 제작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아래 부분으로 잘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어떤 종류, 어떤 버전의 브라우저에서건 상관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 약 10년 전부터 저는 크로스 브라우징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요즘 불어오는 웹표준 열풍에 편승해서 앞서나가는 척, 잘난 척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저는 처음 만든 홈페이지부터 지금의 웹사이트와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크로스 브라우징과 낮은 해상도(지금도 800*600을 기준으로 삼음)에서의 무리없는 이용을 계속 고려해왔습니다. 웹표준이라는 개념에 대해 안 것은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얼마 되지 않았지만, 브라우저가 넷스케이프 말고도 존재한다는 걸 안 이후로는 늘 어떤 브라우저에서도 똑같이 보이도록, 이용이 불편하지 않도록 애써왔습니다. 그래서 웹표준에 대해 알았을 때 저는 속으로 환호했고, 그동안 우리나라의 웹 문화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지금 1996년으로 돌아가서 한 가지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실래요? 물론 복권 번호나 주식 시세를 기억하고 과거로 가서 한몫잡겠다(…)는 식의 답변이 제일 많을지 모르지만(단 당시 로또는 없었으니 복권은 무용지물일지도), 저라면 수수하게 그저 서점을 돌면서 이후 절판될 희귀본이나 수집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_-
생각해보면 당시 일본은 에바 붐('신세기 에반겔리온'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음)이라서 일본의 인터넷 발전에 약간의 기여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바 관련 정보를 다룬 홈페이지가 꽤 많이 나왔고, 그걸 퍼온 우리나라의 홈페이지도 생겼거든요. 그걸 계기로 서브 컬처가 웹이란 공간에서 비교적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지금도 그렇지만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보면 성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애니메이션을 봤다든가 프라모델을 조립했다든가 인형을 샀다든가 하는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실제로 만나면(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을 제외하면) 그런 말을 잘 하지 못하거든요(특히 남자들). 온라인의 익명성과 '예전부터 이런 서브컬처류의 정보가 많았다'는 인터넷의 관습적 전통(?)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막 생긴 MAME가 컴퓨터 성능 향상과 더불어 와레즈 조성의 기폭제가 된 듯 하고…… 우리나라 한정이긴 하지만 이후 터진 불미스러운 사건(속칭 오양 비디오)이 컴퓨터 업그레이드와 고속통신망 보급을 앞당겼다는 말도 있죠. 하지만 이런 논리는 얼마전 김본자 사건에서 일부 네티즌들이 그의 덕분에 웹하드 업체와 제지업체가 성장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틀렸다는 게 아니라, 결과론적 사고지요. 그럼 일제점령기 덕분에 한국 근대화가 빨라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아무튼 제 생각에 우리나라의 내외적 인터넷 환경이 좋아진 건 1997~98년이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최대 치적이 고속통신망 보급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IMF조기졸업은 후유증과 부작용이 남았고, 햇볕정책은 퇴임 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후임정권 후반에 핵실험 파문으로 찬반론이 일고 있어서…….
1996년은 인터넷의 태동기로, 막 인터넷으로 사업을 하는 벤처라는 개념이 생겼고, 사람들이 홈페이지라는 걸 보기(아직 만드는 게 대중적이진 않았음) 시작했고, (전자우편이란 게 있긴 해도) 아직은 디스켓을 들고 다니며 중요한 정보를 교환하던 시기였습니다. 아직은 PC통신의 힘이 강해서 지금 일선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PC통신 동호회에서 '끼리끼리' 놀면서 꿈을 키우던 시기, 통신업체들이 미래의 몰락도 모른 채 현재에 안주하던 시기이기도 했죠. 저 역시 컴퓨터와 인터넷보다는 슈퍼패미컴에 더 열중하던 때라서, 당시의 상황은 이를테면 거대한 태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함과도 같은 시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이 개인과 사회, 인류(물론 지구 인구의 상당수가 아직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전화를 접해보지도 못하고 있지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야 제가 말할 필요도 능력도 없는 부분이겠지요.
























